오창석 화집(上下)
총 426 페이지
오창석 [吳昌碩 1844~1927]
중국 청나라의 서화가.
호 부려
국적 중국
활동분야 미술
출생지 저장성 안길
주요저서 《고철쇄금》
주요작품 《자등도》 《벽도개화도》

근대 이전 중국 전각의 마지막 대가이기도 하다. 호는 부려(缶廬)이고 저장성[浙江省] 안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전각을 좋아하여 역대 전각의 장점을 취한 새로운 전각법을 개발하였다. 특히 석고문자(石鼓文字)를 모방한 글씨를 잘 썼으며 30세 이후에는 전서(篆書) 필법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50세가 넘어서 시작했으며 특히 화훼화를 잘 그렸다. 화풍은 서위(徐渭)나 석도(石濤)를 모범으로 삼아 독특한 경지를 열었고 글씨 쓰는 법으로 그림을 그려 힘찬 느낌을 준다. 소나무·대나무·매화나무의 세한삼우(歲寒三友)와 기석(奇石) 그림은 호방하면서도 참신하다.
화풍은 보기 드문 구도와 소재를 택하고 서체의 필법을 최대한 구사하여 독특한 선의 느낌을 자아낸다. 또한 중후한 필선의 화법을 창출하여 동양 회화미술사상 새로운 문인화의 경지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보(印譜)에는 〈삭고려인존〉 〈오창석인존〉 등이 있고 서화집에는 《고철쇄금》 등이 있다. 그림으로는 《자등도(紫藤圖)》 《벽도개화도(碧挑開華圖)》 《등화난만도(藤華爛漫圖)》(1916) 《옥란도(玉蘭圖)》 《파초장미도》 《모란목련도》(1924) 등이 있다.
이름은 쥔칭[俊卿]. 자는 샹부[香補]였는데 중년 이후에 창숴로 바꾸었으며 창숴[倉碩]·창스[蒼石]라고 쓰기도 한다. 저장 성[浙江省] 안지[安吉]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수재였으나 53세에 이르러 비로소 장쑤 성[江蘇省] 안둥[安東 : 지금의 롄수이(漣水)]의 현령이 되었지만 1개월 만에 사직했다.
오랫동안 뤼수이[濾水]에 살면서 그림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저서로는 〈부려시 缶廬詩〉(4권) 〈부려인존 缶廬印存〉(2권)과 많은 화집이 있다. 그는 시·그림·글씨·전각에 조예가 매우 깊었다.
일찍이 한대의 비문을 많이 읽었고 석고문(石鼓文)을 연구하면서 글씨를 배웠다고 한다. 전서(篆書)·예서(隸書)·해서(楷書)·행서(行書)·초서(草書)에 모두 정통했다. 중년에는 석고문을 모방하는 데 힘을 기울였는데 그의 글씨는 간결하면서도 힘이 있고 소박하면서도 중후하다. 만년에는 전서·예서·광초(狂草)를 썼는데 호쾌하고 분방하다. 또 해서는 굳세고 힘이 넘치는 것이 특징이다. 
도장 새기는 것에서는 처음에는 절파(浙派)의 기법을 배웠고 등석여(鄧石如)·오양지(吳讓之)·조지겸(趙之謙)의 영향을 받았으며 나중에 금석문(金石文)을 깊이 연구해 일가를 이루었다. 서법과 전각 분야에서도 업적이 탁월하다.
1904년 항저우[杭州]에 서령인사(西印社)가 세워져 초대 사장으로 추대되었다. 그림은 서위(徐渭)·석도(石濤)·팔대산인(八大山人)·양주8괴(揚州八怪)의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석도의 영향이 컸다. 매화와 국화 그림은 맑고 도도하며 운필법이 자연스럽고 붓의 힘이 종이 뒷면에 배어들 정도로 힘차서 금석문의 참맛을 맛볼 수 있다. 그의 필묵은 노련하고 중후하며 웅혼하기까지 하다. 색조는 질박하고 온후하다.

| 품명 | 상품페이지 참고 |
|---|---|
| 모델명 | 상품페이지 참고 |
| 법에 의한 인증·허가 등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 그에 대한 사항 | 상품페이지 참고 |
| 제조국 또는 원산지 | 상품페이지 참고 |
| 제조자 | 상품페이지 참고 |
| A/S 책임자와 전화번호 또는 소비자상담 관련 전화번호 | 080-257-4300 / 053-257-4300 / 010-3525-4392 |
사용후기가 없습니다.
상품문의가 없습니다.
상품 수령 후 7일 이내에 신청할 수 있으며, 다음의 경우는 교환/반품 신청이 불가할 수 있습니다.
반품 접수 없이 임의로 반송하거나 우편으로 보낼 경우 상품 확인이 어려워 교환 및 환불이 불가할 수 있습니다.
※ 도서상품의 경우 교환,반품이 불가합니다.
월-금 am 09:00 ~ pm 19:00
토 am 09:00 ~ 15:00
일요일, 공휴일 휴무
농협은행 703-02-452104
예금주 : 박미주
오후 4시 전까지 결제 완료시
당일배송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