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필법강좌(해서)안근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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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씨가묘비와 더불어 안진경 해서의 2대 역작중의 하나이다. 비가 세워진 연도는 정확히 알 길이 없으나비문에 기재된 사실로 추측해보면 이 입비(立碑)는 안진경의 말기의 글씨로 볼 수 있다. 비는 사면각이나 세째 면은 갈아 없어졌고 약 1천 6백 여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비의 자획이 온전하며 특히 삼면의 글씨는 원필이며 강유가 잘 조화되어 있다. 장봉의 표현이 세련되어 있으며 그의 해서중에서 가장 우수한 기교 표현 작품이라 한다. 안진경의 필법은 구양순의 경우와 다른 바 없으나 구법(歐法)보다도 약간 붓을 세우며 안서(顔書)의 가로획은 우상향세(右上向勢 - 붓을 그대로 댄 후 붓을 살짝 들었다가 오른 쪽으로 긋는 필법)의 수법을 사용한다. 구(歐)의 배세(背勢) 안(顔)의 향세(向勢)라고 부르는 이 상대적인 조형수법은 해서 기법의 양극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이 비의 내용은 안진경이 그의 조부인 안근례의 일대기를 써 놓은 것이다. 참고사항 안진경 [ 顔眞卿 ] 중국 당(唐)나라의 서예가. 자 청신(淸臣). 산둥성[山東省] 낭야(琅邪) 임기(臨沂) 출생. 노군개국공(魯郡開國公)에 봉해졌기 때문에 안노공(顔魯公)이라고도 불렸다. 북제(北齊)의 학자 안지추(顔之推)의 5대손이다. 진사(進士)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쳐 평원태수(平原太守)가 되었을 때 안녹산(安祿山)의 반란을 맞았으며 이때 그는 의병을 거느리고 조정(朝廷)을 위하여 싸웠다. 후에 중앙에 들어가 헌부상서(憲部尙書)에 임명되었으나 당시의 권신(權臣)에게 잘못 보여 번번이 지방으로 좌천되었다. 784년 덕종(德宗)의 명으로 회서(淮西)의 반장(叛將)인 이희열(李希烈)을 설득하러 갔다가 감금당하였고 이어서 곧 살해되었다. 그의 글씨는 남조(南朝) 이래 유행해 내려온 왕희지(主羲之)의 전아(典雅)한 서체에 대한 반동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남성적인 박력 속에 균제미(均齊美)를 충분히 발휘한 것으로 당대(唐代) 이후의 중국 서도(書道)를 지배하였다. 해서·행서·초서의 각 서체에 모두 능하였으며 많은 걸작을 남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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