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필법강좌(해서)구성궁예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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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시성[陝西省] 린유현[隣遊縣]의 고궁터에 있는 당나라 때 세운 비석
632년 여름 당 태종이 수나라 때의 인수궁(仁壽宮)을 수리하여 구성궁(九成宮)이라 개칭하고 이 곳에 피서하러 갔을 때 궁의 정원 한 모퉁이에서 단맛이 나는 샘물이 솟아 이를 기념하여 건립하였다 한다.
이 비석의 명문은 당시의 시중(侍中) 위징(魏徵)이 칙명에 의하여 찬(撰)하고 구양순(歐陽詢)이 썼다. 이것은 구양순이 76세 때에 쓴 작품으로 그의 대표작 중 첫째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단정하고 명랑한 서풍과 뛰어난 품격미를 과시한 작품으로 예로부터 해서(楷書)의 극치로 칭송되고 있다.
비문은 24행이며 50자로 되어 있다. 그 탁본은 이미 심하게 마멸되어 그 동안 수 많은 감상자들이 몰려들었던 사실을 말하여 준다. 이와는 별도로 송탁본(宋拓本)의 우수한 서첩(書帖)이 오늘날에 전해지고 있다
참고사항
구양순 [ 歐陽詢 ] 중국 당(唐)나라 초의 서예가. 자 신본(信本). 담주임상(潭州臨湘:후난성) 출생.
진(陳)나라의 광주자사(廣州刺史)였던 아버지 흘(紇)이 반역자로 처형된데다 키가 작고 얼굴이 못생겨서 남의 업신여김을 받는 등 어릴 적부터 불행한 환경을 참고 견디며 자랐다. 그러나 머리는 유난히 총명하여 널리 경사(經史)를 익혔으며 수양제(隋煬帝)를 섬겨 태상박사(太常博士)가 되었다. 그후 당나라의 고종(高宗)이 즉위한 후에는 급사중(給事中)으로 발탁되고 태자솔경령(太子率更令)·홍문관학사(弘文館學士)를 거쳐 발해남(渤海男)에 봉해졌다. 그의 서명(書名)은 멀리 고려에까지 알려졌는데 이왕(二王) 즉 왕희지(王羲之)·왕헌지(王獻之) 부자의 글씨를 배웠다고 한다.
그러나 현존하는 《황보탄비(皇甫誕碑)》《구성궁예천명(九成宮醴泉銘)》《화도사비(化度寺碑)》 등의 비와 《사사첩(史事帖)》 《초서천자문》을 보면 오히려 북위파(北魏派)의 골격을 지니고 있으며 가지런한 형태 속에 정신내용을 포화상태에까지 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의 글씨는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해법(楷法)의 극칙(極則)이라 하며 칭송하였다. 그의 아들 통(通)도 아버지 못지않은 능서가(能書家)로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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